앨범 제작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내년이 다 가기전까지 완성하려고 한다.
시한을 정해두지 않으면 언제까지 지연이 될 지 모르는 일이니
조금 빠듯하지만 그렇게 정했다.
언제부터 앨범을 만들 생각을 가졌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처음 생각했던 방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
친구들과 밤을 세우며 이야기를 하고, 정처없이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고,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며
울고, 웃던 시간들이 (물론 그때에도 무척이나 행복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그리워질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과 다시
웃고 떠들고
머리를 싸매고 노래를 만들고
밤을 세워 녹음을 하는 그 시간들을
글과 음으로 기록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음악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앨범을 만들고 싶었는데
세상일은 어디 내 뜻대로 온전히 흘러가는 것이 하나 없다.
이 계획에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데
스무살적 함께 하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모두 (스무살적엔 그렇게 되기 싫어하던)
훌륭히 보통의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버렸고,
목소리만큼은 한번이라도 꼭 제대로 담고 싶었던,
그 친구는 단 두곡을 남기고 어딘가로 떠나버렸고,
일년내내 같이 음악할 사람들을 찾고 있지만,
음악의 불모지, 저주받은 전라도, 이 빌어먹을 광주땅에는
함께 음악 할 사람들을 찾는게 더럽게도 힘들어지기만 한다.(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말이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고, 생각도 바꿨다.
우리의 음악을 담는 것이 아니라
내 음악을 담기로,
너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좋은 목소리를 담기로,
함께 마주보며 즐겁지만, 어설프게 연주 할 너희들의 연주가 아니라
얼굴도 모르지만, 완벽하게 연주 할 프로들의 연주를 담기로.
언제까지 실현할 수 없는 이상이나 쫓아다니며 시간을 낭비하기엔
그동안 낭비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마음이 급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더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
음악적인 주관이 뚜렷한 나는 결국 우리의 음악이 아니라
우리의 음악으로 포장한 내 음악들을 기어이 담으려 했을테고,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도 빈번했겠지.
너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 건 물론 아쉽지만,
분명 지금 같이 하고 있는 친구는
어떤 장르에도 어울리는 목소리를 갖고있고,
어떤 장르에는 너보다 훨씬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너와는 할 수 없었던 음악을 지금 나는 할 수 있다.
힘들게 만든 노래와 앨범이 질적으로 부족하다면
아마 시간이 지날 수록 자주 찾아 듣기는 힘들 것이다.
추억을 곱씹는 것도 술먹다 안주가 떨어질 때 한 두번이지,
언제까지나 감상에 젖어있을 일이 아니다.
무엇이든 어느정도 완성도가 있어야 자연스럽게 굳어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비용이 늘어나겠지만
어디 사람한테 들이는 심적,물적 비용만 할까.
이렇게 결정하고 나니
멀긴 하지만 길이 보인다.
아 근데 상당히 멀다.
데모음원이 있거나 적어도 작곡,작사가 끝나고 편곡의 방향성이 정해진 곡이 총 다섯곡이다.
이 곡들은 녹음과 믹싱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총 열곡을 담을 예정이니
다섯곡이 남았는데,
스케치를 해놓은 곡들이 있지만, 앨범에 담기엔 망설여지는 곡들이다.
적어도 일년안에 세,네곡은 위의 다섯곡처럼
의심의 여지 없이 마음에 드는 노래를 만들어야 하는데,
내가 예전처럼 음악만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에 쫒겨서 마음에 들지도 않는 노래를 만들어 담고 싶지는 않다.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내가 내뱉은 말들을 지키고 있다.
다만 너희들이 떠나버려서 그 모습을 못봤을 뿐이지.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고,
작업실을 만들었고,
너에게 줄 노래를 만들었었다.
앨범을 만들고 나면 딱히 지켜야하는 내뱉은 말이 없는데
뭘 해야할까?
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구나.
그런데 없어졌잖아.
인디 음악가들이 유일하게 나갈 수 있는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건 내가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야.
지킬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