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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GO/일기

열세번째 장.

모든 일이 대수롭지 않아진다.

 

어떤 것에 설레고

 

기대하는 일이 적어졌다.

 

부끄러워 해야하거나

 

겁이 나야하는 상황에서도

 

감정의 동요가 적어졌다.

 

기쁜일도 우울한 일도 있었겠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쩐지 요새 곡 쓰는 것에 손이 안간다 싶었는데.

 

 

귀찮아 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화를 낼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가끔 화를 낸다.

 

술을 줄여야겠다.

 

 

세월이 날카롭다.

 

이제 슬슬

 

젊음을 배워야 하는 때가 된 것 같다.

 

늙는다는 것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지만,

 

젊다는 게 무엇인지는 점점 잊기 시작했으니,

 

이제 젊음을 애써 공부해야만 한다.

 

 

얼마전에

 

성당 앞을 지나다가 

 

불현듯 안으로 들어갔다.

 

하느님한테 따질 것이 있었다.

 

나한테 왜 이러세요?

 

내가 가끔 허공에 대고 가운데 손가락을 뻗어대는게

 

그렇게 기분이 나쁘셨어요?

 

그럼 그 전에 나한테 좀 잘해주지 그랬어요?

 

앞으로도 그러실거죠?

 

그럼 이거 드세요 선불이예요.

 

그렇게  내 가운데 손가락을 봉헌하려고 들어가던 차에

 

사람이랑 마주쳤다.

 

평일 오후에.

 

참 주도면밀하기도 하다.

 

괜히 신이 아니라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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